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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일본 유학기 9>1년 취학비자 갱신, 일상 속에서도, 마무리하며

by beautyearth2025 2025. 7. 5.

일본에 도착했을 때, 제게 가장 먼저 다가온 정체성은 ‘학생’이 아니라 ‘외국인’이었습니다. 서툰 일본어로 관공서에 서류를 내밀고, 근처 이웃에게 인사를 건넬 때마다, 겉으로는 정중하지만, 어딘가 미묘한 거리감이 존재했습니다. 특히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말 한마디, 눈빛 하나가 “너는 우리와는 조금 다르다”는 조용한 선을 긋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1년 취학비자 갱신

1년이 지나, 저는 취학비자 갱신을 위해 도쿄 입국관리국(入国管理局)을 찾았습니다. 한국에서 학생증 하나로 학교에 다녔던 과거와 달리, 여기서는 1년마다 내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대기실은 차가운 형광등 아래, 조용하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공간이었습니다. 줄지어 앉은 외국인들의 얼굴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적인 분위기는 ‘심사받는 자’의 표정이었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서류를 제출했을 때, 담당 직원은 아무런 인사도 없이 서류를 훑어본 뒤, 짧게 몇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톤은 평범했지만, 그 안에는 일종의 검사와 경고가 뒤섞인 단호함이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껏 얼마나 성실히 살아왔는지와는 관계없이, 혹시라도 규정을 어기진 않았는가를 전제로 두고 있는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서류를 제출하고 도장을 받는 그 시간은 알 수 없는 위압감에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주눅 들었던 경험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분명히 느꼈습니다. 아무리 일본어를 능숙하게 하고, 생활에 익숙해졌다 해도, 나는 이 땅에서 인정받는 존재가 아닌 체류를 허락받는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비자를 받기 위해 설명하고, 입증하고, 기다리는 그 모든 순간은 마치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었습니다. 잘못하면 추방당할 수 있다는 말이 현실처럼 다가왔고, 그것은 삶의 기반이 누군가의 판단 아래 있다는 무거운 자각이었습니다.

일상 속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는 비단 관공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자카야 아르바이트 중, 술 취한 손님이 “외국인인데 말 잘하네”라고 웃으며 말할 때도, 그 말투 속엔 보이지 않는 작은 경계선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던 어느 날, 학교 선후배들과 함께한 단체 회식 자리에서 뜻밖의 장면이 제 마음을 따뜻하게 덮어주었습니다. 오랜만에 한국 사람들만 모여 신나게 한국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변 일본 대학생들이 일본 노래를 떼창 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노래가 너무 시끄러워 대화를 할 수 없었던 우리들은, 그들의 노래가 끝나자마자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떼창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단체로 노래를 부르자 조용히 들으며 빤히 쳐다보던 그들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살짝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한 압박(?)이었었지만, 당당했던 우리들의 기세에 주춤하던 그들의 모습과 노래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박수가 나오고, 서로 인사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세계정세니 과거역사니 하는 것들과 청춘은 전혀 별개였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때는 우리가 외국인이기 전에, 같은 청춘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무리하며

일본에서의 유학생활은 매일이 ‘경계선’ 위를 걷는 일이었습니다. 공손한 미소 뒤에 숨은 거리감, 친절 속에 담긴 조심스러움, 그리고 때때로 마주하는 차가운 행정 절차는 저를 끊임없이 외국인이라는 현실로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도 따뜻한 손길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특히 일본어학교의 선생님들께서는,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문화에 당황하던 저희를 정중하고 끈기 있게 이끌어 주었습니다. 모든 학생에게 균형 있게 눈을 맞춰주던 그분들의 자세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사와 안도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차별과 배려, 어느 한쪽으로 단정 짓기 어려운 순간들이 반복되었지만, 그 수많은 경계 속에서 저는 조금씩, 아주 천천히 사람을 이해하는 감각과 내 마음을 지키는 방법을 배워나갔습니다. 외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때로는 벽이 되었고, 또 때로는 새로운 관계를 여는 열쇠가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저는 언제나 조심스럽지만, 더욱 단단해지는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노력과 경험, 감정과 언어는 이 땅에 닿아 있었고, 그 연결 속에서 저는 분명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이야말로, 차별과 배려 사이에서 흔들리던 저를 조금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가장 소중한 자산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