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유학을 와서 가장 크게 체감했던 생활의 불편함 중 하나는 자전거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숙사에 살던 시절에는 역까지 걸어가 전철을 타고 등교하거나, 대부분 도보로 해결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원룸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새벽 청소 아르바이트는 첫차보다 이른 시간에 출근해야 했고, 집이 역에서 거리가 있었으므로, 모든 걸 도보로 해결하기엔 체력도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주변 일본사람들은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그게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풍경이었지만, 저에게는 넘지 못한 벽처럼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자전거를 탈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자전거를 배우며 울던 새벽
그래서 저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버려진 자전거를 한대 찾아, 자전거를 배우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등교 전 이른 새벽, 저는 동네 공터에서 자전거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 전에 연습하고 넘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첫날에는 균형도 제대로 못 잡고 곧장 넘어졌고, 둘째 날엔 엉덩방아를 찧어 멍이 들었으며, 셋째 날엔 핸들을 잘못 꺾어 무릎이 까졌습니다. 어느 날은 브레이크를 못 잡아 전봇대에 박기도 했습니다. 그런 날은 넘어진 채 눈물이 나올 뻔했습니다. '자전거도 안 배우고 뭘 했나, 나는 왜 이것마저도 이렇게 서툴까’ 하는 자책감과, 몸이 너무 지쳐 아무 말도 하기 싫은 피로가 겹쳐졌습니다. 허벅지며 종아리에 멍투성이가 되며 하루하루 연습을 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점점 실력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죽을 것 같던 시간들이 지나면서 조금씩 속도가 붙고 방향도 자유자재로 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비 오는 날에도 한 손 운전이 가능해졌고, 다른 일본의 학생들처럼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타는 유학생이 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이사
자전거에 익숙해질 무렵, 선배 한 분이 귀국하게 되며 자신이 살던 방을 인수할 사람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에 윤희와 얻은 원룸은 콘크리트 구조였는데 이번에는 목조구조로 훨씬 낡았고, 무엇보다 욕실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월세가 1만 엔 이상 저렴한 것과, 선배의 남겨진 물품들, 특히 싱글 침대를 두고 간다는 말에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일본의 1층집은 이불이 축축이 젖을 만큼 습했거든요. 그 당시 저는윤희와 함께 살던 방에서 혼자 남겨진 상황이었고, 월세와 생활비, 등록금까지 모두 혼자 감당해야 했기에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그 낡은 아파트로 이사를 결정했습니다. 화장실만 있고 욕실 자체가 없어,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았고, 세수와 양치는 싱크대에서, 그리고 이틀에 한번 공용 목욕탕인 센토를 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자전거가 익숙해지면서 가장 좋았던 계절은 단연코 봄이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나서면 분홍빛 벚꽃눈이 온 거리를 덮었습니다. 이제는 자전거도 능숙하게 탈 수 있게 되어, 심지어 비 오는 날엔 우산을 한 손에 들고 달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어색하고 위험하게 느껴졌지만, 일본인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제 모습에 조금은 뿌듯함이 들기도 했습니다. 넘어지며 배웠던 자전거는, 그 자체로 저의 유학생활을 상징하는 상징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불편함에서 시작해, 포기하지 않고 익숙해지고, 마침내 자유롭게 달리는 과정들이 단지 자전거가 아니라, 제 삶과도 같았습니다.
마무리하며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저는 참 많이 서툴고, 참 많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자전거 하나 제대로 타지 못해 넘어지고, 다치고, 스스로가 초라해 보이던 그 새벽의 많은 시간들과 자전거를 배우며 느낀 성취감, 낡은 방에서의 절약과 그리고 벚꽃과 함께 달리며 깨달은 여유와 감사들, 벚꽃눈이 내리던 일본의 골목길.... 힘들었지만 혼자 버텨낸 시간들이 힘이 되었는지, 그 위를 달리던 저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고, 그렇게 조금씩 제 삶도 안정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때의 저를 지금의 제가 한없이 다정하게 안아주고 싶을 만큼, 저는 잘 살아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