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의 유학생활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곤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전문학교에 진학하면서 1년짜리 취학비자에서 2년짜리 유학비자로 바뀌었을 때는 제 마음속에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저는 어학연수온 학생이다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학비자로 바뀐 순간부터는 본격적으로 이곳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적인 책임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최소 2년은 이곳에서 스스로를 책임지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가슴이 벅차기보다는 부담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심장이 두근두근
전문학교 수업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치열하고 실전적이었습니다. 과목마다 매주 과제가 주어졌고, 특히 디자인 관련 수업에서는 창의적인 사고와 표현력이 요구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수시로 창의력을 요하는 과제들은 저를 깊은 고민 속에 빠뜨렸습니다.
창의적 사고는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고, 옆자리 일본 학생들은 이미 손에 색연필을 쥐고 스케치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손놀림은 익숙하고 자신감이 있었고, 저는 그런 모습에서 더 큰 위축감을 느꼈습니다. 밤을 새워가며 도무지 맘에 들지 않는 초안을 몇 번이나 고치고 또 고쳤지만, 결국 제출한 결과물은 제 눈에도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과제를 내고 나면 좌절감이 들며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하곤 했었습니다. 그 시절, 저는 오후 5시부터 12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 곧장 아르바이트를 가서 마지막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꽤 지치는 날들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함께 일하던 일본 대학생 한 명과 조금씩 가까워졌습니다. 말수가 많지 않았지만 따뜻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고, 서로 퇴근이 겹치는 날이면 종종 근처의 ‘스카이락’이라는 24시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깐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다. 늦은 밤, 조용한 레스토랑 한편에서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은 단순한 음료 이상의 위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로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려 '구심’을 먹기도 했었습니다. 정신적으로 너무 팽팽했던 신경들을 조금 느슨하게 내려놓을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저만의 시선과 감정을 담은 표현을 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잘해야 한다 는 부담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떠올랐고, 제 안에 있던 감정이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은 제 과제를 보시고 표현이 좋아졌다며 칭찬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마무리하며
구심을 먹기 시작하면서 문득 유학 초기의 제가 떠올랐습니다. 일본에 도착한 첫 몇 달 동안, 저는 이마에 심한 여드름이 올라와 늘 앞머리로 가리고 다녔습니다. 긴장과 스트레스로 구토에 가까운 두통까지 겹쳐, 들고 온 게보린을 하루에 두세 알씩 먹던 날들도 있었고요. 그러나 일본 생활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면서, 신기하게도 그 여드름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고, 두통도 자연스럽게 잊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 제가 지금은, 가슴이 두근거려 구심을 입에 털어 넣고 있었습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는 달랐지만, 어쩌면 마음은 다시 유학 초기와 같은 압박감으로 긴장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일본에 왔던 그때처럼 버티고, 적응하며 그렇게 조금씩 단단해지면서, 제 안의 계절도 또 한 번 바뀌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학생활은 때때로 외롭고 또 많이 버거웠지만, 그 속에서도 저는 저 자신을 단련해가고 있었습니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 실력 차이, 그리고 몸과 마음의 피로 속에서도 조금씩, 묵묵히 걸어가며 저는 성장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