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가장 잊지 못할 경험 중 하나는 바로 지진이었습니다.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지진이라는 자연현상을, 직접 체험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무서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 사람들이 지진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혀왔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지진도 일상이다
처음 지진을 경험한 날은 학교 수업 중이었습니다. 그날도 평소처럼 일본어 중급반 수업이 한창이었고, 선생님은 칠판에 문형 설명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건물이 살짝 흔들리는 듯한 움직임이 느껴졌습니다. 순간 우리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혹시 지진 인가 싶을 때 갑자기 선생님이 책상 밑으로 들어가라고 했었습니다. 첫 지진의 경험은 그렇게 강렬하게 왔었습니다. 그때 교실이 4층인가 5층이었는데, 무너지면 어떡해야 하나 하고 엄청 걱정하며 벌벌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겁먹은 우리와 달리 선생님은 교실 문을 열고, 비상 대피로를 확보한 뒤 학생들을 하나하나 체크하며 차분하게 대처하셨습니다. 몇 분 후, 진동이 멈추고 나서야 우리는 건물밖으로 나가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그날은 교실 안의 화분이 쓰러지고, 책이 바닥에 떨어질 정도로, 큰 피해는 없었지만, 무엇보다도 놀라웠던 건, 일본사람들이 그 상황에서도 놀라기보다는 차분하게 행동했던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은 일본에서의 지진은 일상이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해 주었습니다. 처음 지진을 겪은 후, 더 강한 지진은 제가 살고 있던 목조 아파트 1층에서 경험했습니다. 그날도 평소처럼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한 후 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집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더니, 방 전체가 좌우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천장에서 매달린 형광등이 심하게 흔들렸고, 책장이 덜컹거리며 위에 올려놓은 작은 인형이 떨어졌습니다. 혼자 있다 보니 덜컥 겁이 나면서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집이 1층이었어서 대충 옷을 걸치고 밖으로 튀어 나갔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진동은 1분 정도였지만, 체감상 몇 분은 된 듯 무서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집주인아저씨와 주변 주민들도 모두 밖으로 대피했었는데,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지만 그 밤의 공포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지진이 매우 흔한 일상이라는 사실에 적응하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버스 정류장 옆이나 학교 게시판, 아파트 현관 앞에는 항상 지진 대피 경로와 비상 연락망이 안내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편의점에서도 방재 키트나 휴대용 손전등, 미니 헬멧 등을 판매하는 것을 보면서, 이 나라 사람들에게 지진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준비하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일상의 일부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한국에서 나고 자란 저는, 처음엔 이런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의 생활 지혜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마무리하며
저는 일본에서 살며, 단순히 지진을 조심하자가 아니라 지진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자는 문화적 합의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지진은 두려운 자연현상이지만, 일본에서 경험한 수많은 순간들은 그것을 두려움으로만 남기지 않고, 철저히 대비하며 위험을 체계적으로 인식하고,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와 구조 속에서 저는 단지 자연재해를 견디는 방법이 아닌, 위기 앞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태도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배운 이 단순하지만 중요한 메시지는, 불안한 순간을 견디는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진이라는 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서 저는 단지 자연의 위력뿐 아니라, 위기 앞에서도 침착하게 행동하려는 사람들의 태도, 그리고 공동체의 질서와 준비성을 함께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지진에 대한 그 경험들은 단지 무섭고 힘든 기억이 아니라, 저에게는 인생을 대하는 자세까지 바꾸어준 소중한 배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