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이 시작되던 1월 초, 눈이 잘 내리지 않는 도쿄의 겨울은 다소 삭막했지만, 마음 한편엔 설렘이 있었습니다. 학업과 아르바이트에 지쳐있던 저에게 학교 선배들과 친구들이 제안해 준 큐슈 자동차 여행은 설렘 그 자체였습니다. 아르바이트 점장님의 양해를 구하고 2박 3일 일정의 여행을 떠났습니다.
여행의 설렘
봉고를 렌트하고 운전은 국제면허를 발급받은 2학년 선배가 맡아 주었지만, 일본의 좌측통행은 여간 낯선 게 아니었습니다. 운전석이 반대에 있고, 방향지시등과 와이퍼의 위치도 반대라 실수할 때마다 차 안은 웃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손으로 티켓을 뽑느라 애를 먹었고, 휴게소에 들를 때마다 다 함께 모여 일정을 다시 확인하곤 했습니다. 첫날은 오사카에 들러 주변을 구경하고 근처에서 숙박하였습니다. 정확히 어디를 갔었는지는 잊었지만, 거리에는 말투가 사뭇 다른 현지인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우리나라 경상도 사투리처럼, 도쿄와는 전혀 다른 톤의 발음과 억양에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간사이 방언이구나 실감했습니다. “난데 야넨(뭐야, 왜 그래?)”, “혼마야(정말이야)” 같은 오사카 사투리는 일본 드라마에서만 듣던 말들이라 무척 신기하게 들렸습니다. 일본어를 배우는 입장에서, 이처럼 지역마다 다른 언어의 색깔을 체감하는 경험은 참으로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큐슈의 명물 중 하나인 화산온천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유황 냄새가 가득하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풍경은 마치 동화 속 세계 같았고, 졸졸 흐르는 온천수 소리에 마음까지 따뜻해졌습니다. 그곳 온천 여관에서 유카타를 처음 입어보는 경험도 했었는데, 유카타는 전통적인 일본의 얇은 옷인데, 온천에서 목욕을 마치고 입는 일종의 실내복이었습니다. 온천장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카타 차림으로 돌아다니는데, 입는 방법도 낯설고 허리끈을 매는 방식도 헷갈렸지만, 여관 아주머니가 친절히 도와주셨습니다. 거울 속 제 모습은 낯설면서도 새로웠고, 어쩐지 일본 속에 더 깊이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선배들과 함께 유카타 차림으로 여관 마당을 산책하고 사진도 찍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재밌었던 장면입니다. 그날 저녁, 온천에서 삶은 달걀도 먹었습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온천수에서 꺼낸 달걀은 유난히 부드럽고 고소했는데, 단순한 달걀 하나에도 여행의 피로가 스르르 풀리는 듯했습니다.
그날 자고 있던 새벽, 지진으로 인한 진동이 방 안을 흔들었습니다. 도쿄에서 지진은 겪어본 터라 많이 놀라지는 않았지만, 지진은 겪을 때마다 당황스럽기는 했습니다.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지만, 지진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일상 속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무섭게 다가왔습니다.
서태지 그리고 차 안의 추억
우리는 여행 내내 차 안에서는 선배들이 갖고 온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라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생소한 리듬과 랩이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그 여행의 기억은 일본 온후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며 학업에 대한 부담을 잊고 신나게 즐겼던 유일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짧은 겨울 여행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기억들은 평생 잊지 못할 청춘의 한 페이지가 되었습니다. 규슈 여행은 제 유학 생활에서 처음 떠난 장거리 여정이었습니다. 처음 경험하는 좌측통행, 사투리, 온천과 지진, 그리고 차 안에 울려 퍼진 서태지의 노래까지… 모든 순간이 신선하고 특별했습니다. 그 여행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을 떠나 처음으로 진짜 일본을 느낀 시간, 언어 너머에 있는 문화와 감정을 조금씩 이해해 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웃고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느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함께했던 선배들과 친구들은 단순한 여행 동반자가 아니라, 삶의 중요한 조각이 되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