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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일본 유학기 14>일본의 연말연시, 마무리하며

by beautyearth2025 2025. 7. 9.

겨울방학이 시작되었지만, 저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항공권은 부담스러웠고, 학비와 생활비 때문에 겨울방학도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해 12월, 일본에서 맞이한 첫 연말은 그렇게 조용히 시작되었습니다. 아침에는 편의점 삼각김밥 하나로 끼니를 때웠고, 저녁엔 도시락으로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계절이 계절인지라 낯선 음식들이 더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따뜻한 국이 없다는 점도, 기름지고 매운 게 없다는 점도 마음을 쓸쓸하게 했습니다. 

일본의 연말연시

그해의 마지막날인 오오미소카(大晦日). 한국에서는 가족이 함께 모여 북적이는 분위기지만, 일본은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이었습니다. TV에선 매년 방송되는 홍백가합전이 흘러나왔고, 그 옛날 아이돌들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날 저녁, 아르바이트 가게에서 쉬는 사람들끼리 모여 해넘이 소바(年越しそば)를 함께 먹었습니다. “올해도 수고했어요”라는 인사와 함께 소바를 조심스럽게 건네주던 점장님의 얼굴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메밀국수 위에 살짝 올려진 튀김 조각 하나가 그날 저녁의 온기였습니다. 유학생활 중 처음으로 누군가가 나를 챙겨준다는 느낌을 받았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새해 아침, 한국이었다면 떡국 냄새가 진동했겠지만, 그날 아침 저는 편의점 도시락으로 아침을 먹었습니다. 창밖은 조용했고, 학교도 휴무였으며, 도쿄의 거리는 평소보다 더 적막했습니다. 일본의 설날은  조용한 기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아르바이트 가게에서 저를 위해 남겨둔 오세치 요리가 있었습니다. 작은 반찬통 안에 검은콩, 연근, 달달한 계란말이와 생선살이 정갈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새해 첫 음식이니까 꼭 먹으라는 점장님의 그 말에 괜히 울컥했던 건, 고향을 떠나 맞은 첫 설날이었기 때문이었겠지요. 마음이 울컥했던 그날, 저는 용기를 내어 콜렉트콜을 걸었습니다. 당시엔 휴대전화도 없었고 국제전화 요금은 부담스러웠기에, 수신자 부담 전화인 콜렉트콜이 유학생들에게는 유일한 연결 수단이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떡국은 먹었냐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짧은 통화였지만, 그 몇 마디가 온몸을 따뜻하게 감쌌습니다. 말끝마다 울음이 섞일 것 같아 일부러 웃으며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무리하며

설날 다음 날, 같은 처지의 유학생 친구들과 작은 모임을 가졌습니다. 고향에 가지 못한 몇몇 친구들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다, "떡국이라도 한 그릇 끓여 먹자"며 모였습니다. 누군가는 떡을 사 오고, 또 다른 친구는 김과 계란을 준비해 왔습니다. 좁은 원룸의 미니 주방에서 자그마한 냄비에 떡국을 끓이며 우리는 나지막이 웃었습니다. 그 따뜻한 국물 한 숟가락에, 우리는 마음속 허기를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각자 다른 이유로 일본에 남았고, 상황은 달랐지만, 그날만큼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조용한 위로가 되었고, 그 순간을 함께 나눈 그 친구들이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었는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겨울, 그 작은 떡국 냄비 앞에 둘러앉은 얼굴들을 떠올릴 때마다, 저는 언제든 다시 앞으로 걸어갈 힘을 얻습니다. 그해 겨울, 저는 비록 가족과 함께하지 못했지만, 삼각김밥과 도시락, 소바 한 그릇, 오세치 반찬 속에서 일본이라는 사회가 가진 조용한 온기를 배웠습니다. 겉으로는 소박하고 담백했지만, 그 속엔 나름의 배려와 전통, 그리고 공동체의 감성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움은 컸지만, 그 속에서 저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또 누군가의 배려에 마음을 열 줄 아는 법을 배워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