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학생활 중, 자주 찾게 된 공간이 바로 편의점이었습니다. 일본 가기 전에는 몰랐던 편의점이라는 곳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주변을 환하게 밝혀주는 곳이었습니다. 늦은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저녁을 차릴 여유도 없어 편의점 도시락을 사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처음엔 한입 가득 퍼 담는 한국의 반찬들과 달리, 작게 나뉘어 정갈하게 담긴 일본 도시락 반찬들이 낯설기만 했습니다. 작은 그릇 안에 꼭 맞게 놓인 한 조각의 계란말이, 소금기 없이 담백한 삶은 야채, 그리고 미묘한 단맛이 도는 고기반찬들, 음식 하나에도 규칙과 절제가 묻어 있었고, 그 정갈함이 한편으론 차갑게도 느껴졌습니다. 어느 날은 도시락의 작은 오징어조림 반찬 하나를 입에 넣고, 괜스레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매콤하고 기름진 걸 먹고 싶었던 것도 있었지만, 어쩌면 그날은 엄마 밥이 너무 그리웠던 날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시락 반찬 하나가 전해주는 문화의 차이는, 때론 마음의 빈틈까지 건드리곤 했습니다.
불단과 동네 묘지
당시 일본어학교 사무실에서 일하던 아키코와는 우연한 대화 몇 번을 계기로 조금씩 가까워졌습니다. 항상 차분하고 공손했던 그녀는, 유학생인 제 상황을 세심하게 배려해 주는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르바이트가 없던 야스미날에, 그녀는 나를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그녀의 집으로 초대해 주었습니다. 꽤 큰 규모의 단독 주택이었던 그녀의 집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거실 한쪽에 놓인 불단(부츠단)이었습니다. 교과서에서 일본 주택의 각종 명칭을 글로만 배웠던 저에게는 실물을 접하는 기회였습니다. 어느 가정에나 있다는 불단, 조상님께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리는 공간, 일본 가정에서 이런 모습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순간 숙연해졌습니다. 한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는 가족에 대한 기억의 형태가 새로웠습니다. 아키코의 부모님이 안 계셨기에 저는 주방을 빌려 준비해 간 재료로 잡채를 만들었습니다. 요리실력은 없었지만 준비해 간 고기와 당면, 야채들을 볶으며 아키코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의 음식을 나눴습니다. 일본유학 중에 전통적인 일본 가정을 경험할 기회는 좀처럼 없어서, 저에게는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살다 보면, 도심 속에서도 쉽게 마주치는 묘지의 풍경이 처음엔 참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학교 가는 길,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골목 어귀에도 작은 묘지들이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공동묘지라 하면 산속 깊숙이 있어야 할 것 같은 인식이 있어서일까요. 이처럼 일상 가까이에 죽음이 조용히 공존하고 있는 모습은 신기하면서도 어딘가 묘하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작은 돌탑과 정성스레 정돈된 비석들, 가끔은 향 냄새가 살짝 풍겨오는 길목에서, 일본 사회의 죽음을 대하는 자세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조용히 기억하고,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 그건 어쩌면 일본 특유의 공동체 감성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집집마다 놓인 불단도, 동네마다 있는 묘지도 어느새 낯설지 않고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무리하며
아르바이트가 없는 야스미날에는 처음엔 쉬는 자체로 그저 달콤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용한 하루가 주는 외로움도 찾아왔습니다. 작은 방 안에 혼자 누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 정적 속에서 문득 혼자라는 사실이 깊게 스며들곤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고요함이 낯설지 않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때로는 조용했고, 때로는 외로웠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 새로운 문화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는 배움, 그리고 잡채 한 접시에 담긴 위로와 환대가 있었습니다. 도시락 반찬 하나에 담긴 절제의 미학, 불단 앞에서의 정숙함, 그리고 아키코 씨와 나눈 웃음 속에서, 저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공동체적 고요함을 조금씩 이해해 갔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더 이상 외로움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야스미의 고요한 하루 속에서 저는 더 단단해지고 있었고, 그 잔잔한 하루들이 쌓여, 1년 후의 제 모습을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