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가을, 유학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던 무렵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국인 선배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JLPT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일본대학이나 취업을 위해서는 필수로 1급 이상의 자격이 필요했으므로 2년 차 되는 선배들은 모두들 시험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1년에 한 번뿐인 시험이니 연습 삼아 응시해 보라는 학교 선배들의 권유에, 일본에 온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시기였고, 스스로가 어휘면에서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컸지만, 그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 객관적 평가를 받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1급이라는 벽에 도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JLPT 준비 과정
시험 준비는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어휘 중심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엔 지금처럼 온라인 강의나 스마트폰 앱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직접 단어장을 만들어 하루 수십 개씩 외웠습니다. 낮에는 학교 수업, 오후엔 이자카야에서 아르바이트, 그리고 밤 11시가 넘으면 작은 책상 앞에 앉아 듣기 테이프를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워크맨에서 흘러나오는 청해 음성은 낯설고 빠르게 느껴졌지만, 반복할수록 조금씩 귀에 익기 시작했습니다. 현재의 JLPT는 N1~N5의 5단계로 개편되었고, 시험도 1년에 두 번(7월과 12월) 시행되어 응시 기회가 늘었습니다. 구성 면에서도 실생활에서의 언어 활용 능력을 중시하게 되었으며, 문법보다 독해·청해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시험을 준비했던 1992년 당시 JLPT는 지금과는 다르게 1급부터 4급까지의 4단계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1급은 가장 높은 단계로, 일본 대학 진학이나 취업에도 사용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시험은 연 1회, 매년 12월 첫째 주 일요일에만 시행되었기 때문에, 한 번의 기회를 놓치면 1년을 다시 기다려야 했습니다. 시험 과목으로는 문자·어휘 100점, 청해 100점, 문법·독해 200점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총점은 400점이었습니다.1992년 12월 첫 주 일요일에, 시험장을 향해 가던 길의 그 차가운 겨울바람과 떨리는 마음이 기억납니다. 일본 전국에서 시험이 치러지는 날이라 시험장은 수험생들로 북적였습니다. 단어, 문법, 독해, 청해까지 빽빽한 문제들 사이에서, 그날의 집중력은 내 유학생활 전체를 통틀어 가장 치열했던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시험 문제는 빠르게 쏟아졌고, 듣기 파트에서는 집중력이 곧 생존이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속도, 낯선 표현들이 이어졌지만, 그동안 외워온 단어들이 들릴 때마다 신기했었습니다. 인사도 못하던 내가 1년도 안되어 일본어시험을 볼 수 있게 되다니 스스로가 대견했던 때였습니다. 선배들은 쉬웠다며 시험문제들을 얘기하는데, 저는 생각보다 어려웠던 시험에 좋은 경험 했다며 기대는 안 하기로 했습니다. 합격 결과는 1993년 2월에 도착했습니다. 당당히 1급 합격. 결과는 생각보다 더 놀라웠습니다. 문자·어휘는 74점, 청해는 93점, 문법·독해는 200점 중 174점, 총점 341점으로 1급에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선배들의 점수는 거의 380점 이상이었으나, 1년 안된 저로서는 잘한 것이라며 학교에서도 칭찬을 받았던 기억 있습니다. 하지만 어휘가 아직 약한 것은 사실이었고 완벽하게 알고 풀지 못한 문제도 있었습니다. 앞으로 1년의 시간 동안 어떻게 시험 준비를 해야 할지 감잡은 계기가 되었던 시험이었습니다. 처음 봤던 JLPT, 그것도 일본에 온 지 채 1년이 안 된 시점에서의 1급 합격은 스스로에게 보내는 가장 큰 격려였습니다. 누구에게 자랑하지 않아도, 그날의 결과지는 유학생활의 모든 고생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1990년대와 지금의 JLPT
그 시절 JLPT는 지금처럼 N1~N5가 아닌, 1급~4급 체계였습니다. 1급은 가장 상위 등급으로, 일본 대학이나 기업 입사 시 공신력을 인정받던 시험이었고, 진학을 위한 필수 등급이었습니다. 출제 범위도 넓고 문법 중심이 강했으며, 청해 파트의 일본어 속도는 지금보다 느렸지만 간지등의 어휘 수준은 상당히 까다로웠습니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1년에 두 번이 아닌, 오직 12월 한 번뿐이었으므로, 시험 기회를 놓치면 1년을 다시 기다려야 했기에, 수험생들의 긴장감도 훨씬 컸었습니다. 지금의 JLPT는 시험 빈도와 문제 유형이 개선되었지만, 당시의 시험은 더 현장형이고 실력 중심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시험 당일, 긴장된 마음으로 시험장에 들어섰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JLPT 합격증을 받았을 때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지 제 실력을 시험해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그 도전은 제 자신을 믿을 수 있게 해 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JLPT 준비는 결국 점수 이상의 의미를 내게 안겨주었습니다. 무언가를 꾸준히 준비하고 달려본 경험, 공부 루틴의 힘, 그리고 선배들과의 유대감까지. 지금까지도 그 경험은 저에게 커다란 자신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그 당시엔 눈앞의 시험만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살아갔지만, 그 합격 이후엔 ‘이제는 이 언어로 진짜로 나를 표현해 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JLPT 1급 합격은 단지 자격증 취득을 넘어서 일본어에 대한 자신감을 만들어 주었으며, 그 후의 공부, 진학, 심지어 인간관계까지도 조금 더 당당하게 나설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