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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일본 유학기 11>동네 공원, 까마귀 떼, 마무리하며

by beautyearth2025 2025. 7. 7.

토요일 아침, 알람 없이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기숙사도 아니고, 더 이상 룸메이트도 없는 조용한 원룸.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뜻했지만, 그 고요함은 처음엔 낯설고 조금은 쓸쓸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점점 그런 시간들이 제 자신과 단둘이 있는 소중한 순간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누구에게 방해받지 않고,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하루를 설계할 수 있는 시간. 그건 일본에서 처음으로 느껴본 고요한 자유였습니다.

동네 공원

토요일에는 느지막이 일어나 대충 아침을 해결한 후,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의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공원 입구에서부터 줄지어 선 아름드리나무들이 양쪽으로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고, 페달을 밟으며 천천히 나무 사이를 지나갈 때면, 마음까지 조용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자전거 소리, 바람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 모든 것이 한 폭의 정적인 풍경화처럼 느껴졌습니다. 저에게 공원이라는 곳은 어쩌다 한번 아침 운동 겸 가던 곳이었는데, 도쿄에서는 아르바이트 시간이 뜰 때나 일부러 자전거를 타며 산책하는 곳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만큼 넉넉한 공간과 아름드리나무로 잘 가꾸어져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피크닉 장소로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도심 속 크고 작은 공원들의 아름다움을 처음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공원에 가면 저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편의점에서 사 온 삼각김밥과 우롱차를 먹으며, 가족과 산책 나온 사람들, 강아지를 데리고 운동하는 이웃들, 아무 말 없이 나무 아래 책을 읽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일주일간의 피로를 푸는 일종의 의식처럼 공원을 자주 찾곤 했었습니다. 또 일본의 공원은 단지 쉼터가 아니라, 사람들이 타인을 방해하지 않으며 공존하는 예절의 공간처럼 보였습니다. 자전거도 조용히, 대화도 낮게, 쓰레기는 항상 각자 정리해 나오는 모습들, 이런 풍경은 일본이라는 사회의 깊은 정서를 작은 공원이라는 공간 속에서도 엿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까마귀 떼

처음 일본 공원에서 까마귀 떼를 마주했을 때, 솔직히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 날 오후, 조용히 산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수십 마리의 까마귀들이 크게 울부짖으며 몰려드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머리 위를 나는 까마귀들의 그림자가 왠지 모르게 불길하고 음산하게 느껴졌습니다. 한국에서는 보통 까마귀를 불길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그 이미지가 머릿속에 깊이 남아 있었던 것도 한몫했었습니다. 하지만 몇 주, 몇 달이 흐르며 그 까마귀 떼의 등장도 하나의 일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주변의 일본인들은 까마귀가 날든 말든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공원 벤치에 앉은 사람들조차 무심한 듯 조용히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오후가 깊어질수록, 하늘에는 서서히 까마귀 떼가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수십 마리씩 검은 점으로 퍼지는 그 모습은 처음엔 낯설고 무서운 풍경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고, 까마귀 떼의 울음소리는 일본 공원의 저녁을 알리는 익숙한 배경음처럼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마무리하며

처음엔 어색하기만 했던 혼자 있는 시간들이 향수병을 일으키며 나도 모르게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 그 안에는 제 자신과 대화하고, 느끼고, 정리하는 평화가 있었습니다. 아름드리나무 아래에서 느꼈던 바람과  까마귀 떼가 날던 저녁 하늘, 그리고 혼자 먹던 삼각김밥의 짭조름한 맛 등 그 모든 것이 저를 조용히 성장시켜 주었습니다. 외국에서 혼자 보낸 토요일 오후는 누군가에게는 지루한 시간일 수 있지만, 저에겐 혼자라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나 자신을 알아가는 연습의 시간이었습니다. 까마귀 소리마저 낯설지 않게 들리는 지금, 저는 어느새 이 나라의 리듬에 스며들고, 타인과 자연, 그리고 나 자신과 공존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