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엄마의 일본 유학기 10>홋케구이와 낫또, 입에 밴 스미마셍, 마무리하며

by beautyearth2025 2025. 7. 6.

 일본에서의 하루하루는 거창한 사건 없이 흘러가지만, 그 속에 담긴 ‘작은 차이’들은 어느새 제 삶의 결을 바꾸고 있었습니다. 계절마다 바뀌는 식탁 위의 재료, 말없이 놓인 물수건, 길을 비켜줄 때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스미마셍” 한마디까지... 그 모든 건 단순한 문화가 아니라, 일상 속 배려의 언어와 태도였습니다.

홋케구이와 낫또

시부야의 오코노미야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저녁 영업이 끝난 뒤 직원 식사를 함께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했던 건 바로 홋케구이(ほっけ焼き)’, 그러니까 임연수어 구이였습니다. 두툼한 홋케에 간장소스를 살짝 발라 석쇠에 구워낸 홋케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는데 밥도둑 그 자체였습니다. 지친 몸으로 앉아 따끈한 밥에 홋케 한 점을 얹어 먹을 때마다 “아, 그래도 오늘 하루 잘 버텼다”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일본 사람들도 많이 먹지만, 저 같은 유학생에게는 맛과 감정이 동시에 녹아든 기억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본 음식이 그렇게 반가웠던 건 아닙니다. 특히 첫 도전에 실패한 음식이 있었으니, 바로 ‘낫또(納豆)’였습니다. 흰밥과 미소된장, 낫또가 전부일 때도 있었는데, 참 어려웠습니다. 처음 몇 번은 옆사람에게 건네거나 남기기도 했었습니다. 건강에 좋고 일본인의 아침 식탁에 빠지지 않는 전통 식품이라고 들었지만… 비닐을 벗기는 순간부터 싸움은 시작되었습니다. 끈적한 실처럼 늘어지는 그 점성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특유의 향과 미끌거림은, 처음 접한 저에게는 작은 공포에 가까웠습니다. “익숙해지면 정말 맛있어요!”라며 권하던 동료의 말에 용기 내어 한입 먹었지만, 그날 저녁 저는 결국 밥과 된장국으로 식사를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일본의 식탁과 생활 전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작은 부분까지 신경 쓰는 배려의 습관이었습니다. 젓가락 받침을 꼭 사용하는 것, 물수건(おしぼり)을 반드시 제공하는 것, 비 오는 날에는 가게 앞에 우산 비닐 포장이 준비되어 있는 것 등 이 모든 작은 디테일들이 ‘당연한 듯하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문화’라는 걸 느꼈습니다.

입에 밴 스미마셍

일본에서 지내면서 저도 모르게 입에 붙게 된 말이 있습니다. 바로 “스미마셍(すみません)”입니다. 누군가와 어깨를 살짝 부딪혔을 때, 점원에게 물건을 물어볼 때, 심지어 누군가 제게 먼저 잘못을 했을 때조차 본능처럼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이 스미마셍이었습니다. 처음엔 '왜 이렇게 자주 사과를 하지?'라고 느꼈지만, 이 표현은 단순한 사과가 아니었습니다. 감사의 뜻, 상대방에 대한 배려, 그리고 사회적 거리를 조절하는 완충어처럼 사용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에게 장난으로 물을 튀겼을 때 저도 모르게 “스미마셍!”이라고 말하는 저 자신을 보며 일본사람 다 됐네라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스미마셍은 나도 모르게 몸에 밴 ‘일본의 방식’이자, 타인을 배려하며 공존하려는 언어적 습관이라는 것을요.

마무리하며

일본은 참 ‘작은 것’들이 사람을 감동하게 만드는 나라입니다. 음식 하나에도 계절을 담고, 인사 한마디에도 격식을 잃지 않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예절로 서로를 배려합니다. 그 섬세함은 처음엔 불편했지만 제 일상과 감정의 리듬에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어려웠던 낫또의 끈적임조차, 지금은 일본이라는 사회가 가진 복잡하고도 깊은 맛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 끝에 먹던 따뜻한 홋케 한 점은 그저 생선구이가 아니라, 오늘 하루 잘 버텨냈다는 조용한 위로였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지금의 저에게 낫또는 떨어지면 불안한 음식이 되었고, 배고프고 고단했던 그 시절 홋케구이의 고소하고 짭조름한 향은 어디서도 맛볼 수 없지만, 그 안에서 버텨낸 제 하루는 아직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