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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일본 유학기 4>기숙사에서, 다양한 국적 다양한 생활방식, 마무리하며

by beautyearth2025 2025. 6. 20.

일본에 도착하고 기숙사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설렘이 아니라 막막함이었습니다. 관리인이었던 아마 노상에게서 받은 방 열쇠로 방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텅 빈 다다미 방, 작은 창문, 이층 침대.... 그 단순한 풍경 앞에 정말 일본에 왔구나라고 실감했습니다.

기숙사에서

제가 지낸 기숙사는 일본어학교에서 1시간 거리의 아라카와 강 주변에 있는 2층짜리 건물로, 각 방은 2인실이었고 복도에는 공용 화장실과 작은 주방이 있었습니다. 먼저 도착해 있던 한국 친구들과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미 친해져 있었지만, 늦게 온 윤희와 저만 어색해했었습니다. 처음 며칠은 말소리 하나 없이 조용히 복도를 오가며, 누구와도 눈 마주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외국생활이 그렇잖아요. 나가면 다 애국자 되고 다 친구 된다고... 우리도 금방 친해져서 반찬도 같이 만들고 밥도 나눠먹곤 했었습니다.

일본 처음 가면 왜 그렇게 김치가 먹고 싶은 걸까요? 쪼끄만 병에 든 엄청 비싼 기무치를 도저히 사 먹을 엄두가 안 나서, 양배추로 김치를 담아 먹기도 했었습니다. 맛은 그냥 양배추에 고추물들인 거였지만, 빨간 양배추 김치는 자체로 충분한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다양한 국적 다양한 생활방식

기숙사에는 한국, 중국, 태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니 신기했었습니다. 우리들은 일본에 유학온 사람들이라 소통은 되든 안되든 일본어로 했는데, 진지한 우리들 모습을 외부에서 보면 참 웃겼겠구나 생각했었어요. 기숙사에서 6개월쯤 지나니 독립해서 나가는 친구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고, 왠지 나도 독립해야겠다는 조급함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아무래도 공동생활이 주는 불편함이 크거든요. 어떤 친구는 아침에 밥을 먹고, 어떤 친구는 밤늦게까지 음악을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커피에 설탕을 네 숟갈 넣었고, 누군가는 양치하면서도 음악을 크게 틀곤 했죠. 그 모든 게 처음엔 낯설고 때론 불편했습니다. 일본 유학 생활도 어느덧 6개월을 넘기던 무렵, 윤희와 저도 작은 원룸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기숙사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언어도 일상 회화는 큰 문제없을 정도였기에 이제 나도 자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기숙사 방을 정리하고, 마지막 날 짐을 들고 나오던 순간, 묘한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기숙사는 불편해도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습니다. 밤늦게 복도에서 들리는 발소리, 주방에서 라면 끓이는 소리, 공용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까지도 혼자가 아니다는 무언의 위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모든 게 내 책임이라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진 겁니다. 물론 동거인 윤희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지만요.

마무리하며

기숙사 생활은 즐거웠고,  복잡했으며 때때로 외롭고, 불편했습니다. 기숙사를 떠나 처음 맞이한 독립은, 그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혼자 책임지고 살아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는 과정이었습니다. 저와 윤희는 이사한 그 방 안에서 조금씩 우리들만의 리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냉장고에 무엇을 채울지, 어떤 식기로 밥을 먹을지, 라면 대신 반찬을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작은 시도들도 하며 나름 즐거운 시간들로 우리들의 공간을 채워갔었습니다. 윤희가 귀국하기 전까지는요. 하나하나 서툴고 느렸지만, 그 모든 것이 진짜 자립의 첫걸음이었습니다. 외로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지만, 외로워도 할 수 있다는 감각이 생긴 것이 제겐 가장 큰 성장입니다. 불안하고 외로웠지만, 그 시기를 지나고 나니, 지금은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줄도 알게 되었고, 무언가를 결정할 때 망설임이 줄었습니다. 유학 생활의 진짜 공부는, 언어만이 아니라 바로 이런 삶의 훈련이 아닐까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