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의 일본 유학은 벌써 33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잊힌 기억은 접어 두고 인상 깊었던 내용들로 채워보겠습니다. 1992년, 제나이 스물다섯에 처음 일본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그 시절엔 지금처럼 정보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해외 유학은 먼 나라 이야기 같았고, 제 주변에서 그런 선택을 한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혼기 찬 딸내미가 어느 날 갑자기 유학을 간다 하니, 당연히 집안의 반대(특히 아버지)도 심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회사생활을 하며 퇴근 후 디자인 학원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배우고 있었는데, 학원 선생님의 권유로 일본유학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고민 끝에 디자인 학원과 유학원을 통해, 학원에서 알게 된 동생과 함께 일본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엄청났던 아버지의 반대와 금전적 지원도 없이 말입니다. 무작정 어딘가 낯선 곳에서 나를 새롭게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가방을 쌌었습니다.
왜 하필 일본?
그 당시는 일본 대중문화가 한국에서 금지되어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도 어릴 때 몰래 보던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 그리고 미술서적에서 느껴지는 감성은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무엇보다도 ‘가깝지만 낯선 나라’라는 이중적인 느낌이 끌렸던 것 같습니다. 일본은 그 당시만 해도 일본은 선진국이었고, 특히 디자인이나 만화, 제빵 등은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앞서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유학을 고민하면서 일본의 치안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본으로 결정했었습니다. 거리상 우리나라와 가깝기도 했고요. 그렇게 알아본 끝에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일본어학교라는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본어학교는 종로에 위치한 어느 유학원(상호 잊음)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1992년, 저는 유학원을 통해 일본 유학을 준비했습니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모든 정보가 넘쳐나고, 유튜브만 봐도 유학 준비 전 과정을 알 수 있는 시대지만, 그 당시만 해도 유학은 정보를 아는 사람만 갈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그때는 일본어는 물론 유학 절차 자체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인터넷도 없고, 유학 정보 서적도 드물었기에 유학원 팸플릿이나 설명회 전단지가 거의 유일한 정보 창구였죠. 학교는 어떤 기준으로 고르는지, 비자는 어떻게 받는지, 숙소는 누가 구해주는지조차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원의 소개로 알게 된 유학원을 통해 본격적인 일본 유학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유학원을 방문했을 때 상담실에서 직원분이 꺼낸 건 <일본어학교 리스트가 담긴 얇은 책자>였습니다. 학교 위치, 입학 시기, 수업 시간, 기숙사 유무 등만 간단히 정리된 그 자료는 지금 보면 믿기 힘들 만큼 단순했죠. 하지만 그때는 그 한 권이 전부였고, 그 안에서 저는 랭귀지스쿨 즉 ‘일본어학교’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습니다. 유학원에서는 학교 지원 서류 준비부터 비자 신청, 기숙사 예약까지 전 과정을 도와주었습니다. 세세한 서류들은 기억에 없지만, 제명의 통장에 한화 2천만 원 예금잔고증명이 필요했던 건 기억나네요.
급하게 융통해서 준비했었거든요. 유학원이 없었다면 저는 유학을 결심하고도 방법을 몰라 포기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요즘처럼 ‘셀프 유학’이 가능한 시대가 아니었기에, 누군가가 정리해 준 절차와 일정표가 너무 소중했습니다. 특히 비자 신청과 항공권 구매, 그리고 출국 전 오리엔테이션은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일본의 첫 느낌
1992년 4월 입학이었으므로 3월 하순경, 엄청 큰 3단 지퍼 이민가방을 끌고 일본으로 출발했습니다. 나리타에서 기숙사까지 찾아가야 했는데, 학교 담당자분이 어느 정도까지는 데려다줬었고, 그 이후는 같이 간 동생과 엄청 고생하며 찾아갔었던 기억이 납니다.
일본의 첫 느낌은 "와~ 일본은 한국하고 다르네"였습니다. 길가의 많은 야자나무와 기모노를 입은 할머니들에게서 가깝지만 전혀 다른 나라임을 느꼈었습니다. 기숙사는 말이 안 되는 저희를 위해 유학원과 어학원에서 주선해 준 곳이었는데, 일본어가 안 되는 저는 일본의 야자나무만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도, 번역기 앱도 없던 시절이었기에 공항에서부터 시작된 언어의 장벽은 실감 그 자체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기숙사에 처음 도착했을 때, “과연 내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첫 시작은 두려움 투성이었지만, 동시에 제 인생의 방향을 바꾼 용기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히라가나만 겨우 떼고 일본어 한 마디 하지 못했던 내가,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고 친구를 사귀고, 나아가 전문학교에 진학까지 하게 된 여정은, 이 한 발자국에서 시작됐죠. 다음 글에서는 제가 일본어 한마디 못하고 무작정 시작했던 유학 초기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