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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일본 유학기 11>동네 공원, 까마귀 떼, 마무리하며 토요일 아침, 알람 없이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기숙사도 아니고, 더 이상 룸메이트도 없는 조용한 원룸.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뜻했지만, 그 고요함은 처음엔 낯설고 조금은 쓸쓸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점점 그런 시간들이 제 자신과 단둘이 있는 소중한 순간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누구에게 방해받지 않고,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하루를 설계할 수 있는 시간. 그건 일본에서 처음으로 느껴본 고요한 자유였습니다.동네 공원토요일에는 느지막이 일어나 대충 아침을 해결한 후,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의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공원 입구에서부터 줄지어 선 아름드리나무들이 양쪽으로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고, 페달을 밟으며 천천히 나무 사이를 지나갈 때면, 마음까지 조용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자전거 소리, 바.. 2025. 7. 7.
<엄마의 일본 유학기 10>홋케구이와 낫또, 입에 밴 스미마셍, 마무리하며 일본에서의 하루하루는 거창한 사건 없이 흘러가지만, 그 속에 담긴 ‘작은 차이’들은 어느새 제 삶의 결을 바꾸고 있었습니다. 계절마다 바뀌는 식탁 위의 재료, 말없이 놓인 물수건, 길을 비켜줄 때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스미마셍” 한마디까지... 그 모든 건 단순한 문화가 아니라, 일상 속 배려의 언어와 태도였습니다.홋케구이와 낫또시부야의 오코노미야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저녁 영업이 끝난 뒤 직원 식사를 함께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했던 건 바로 ‘홋케구이(ほっけ焼き)’, 그러니까 임연수어 구이였습니다. 두툼한 홋케에 간장소스를 살짝 발라 석쇠에 구워낸 홋케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는데 밥도둑 그 자체였습니다. 지친 몸으로 앉아 따끈한 밥에 홋케 한 점을 얹어.. 2025. 7. 6.
<엄마의 일본 유학기 9>1년 취학비자 갱신, 일상 속에서도, 마무리하며 일본에 도착했을 때, 제게 가장 먼저 다가온 정체성은 ‘학생’이 아니라 ‘외국인’이었습니다. 서툰 일본어로 관공서에 서류를 내밀고, 근처 이웃에게 인사를 건넬 때마다, 겉으로는 정중하지만, 어딘가 미묘한 거리감이 존재했습니다. 특히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말 한마디, 눈빛 하나가 “너는 우리와는 조금 다르다”는 조용한 선을 긋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1년 취학비자 갱신1년이 지나, 저는 취학비자 갱신을 위해 도쿄 입국관리국(入国管理局)을 찾았습니다. 한국에서 학생증 하나로 학교에 다녔던 과거와 달리, 여기서는 1년마다 내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대기실은 차가운 형광등 아래, 조용하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공간이었습니다. 줄지어 앉은 외국인들의 얼굴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적인 분위기는 ‘심사.. 2025. 7. 5.
<엄마의 일본 유학기 8>아르바이트는 필수, 센토에서 받은 위로, 마무리하며 윤희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난 뒤, 고민 끝에 학교 선배가 살던 오래된 방을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욕실이 없고, 벽지도 오래된 그곳은 누가 보기엔 불편한 집이었지만, 저에게는 한 달 월세가 1만 엔 이상 줄어드는 생존의 기회였습니다. 처음에는 목욕을 매번 센토에서 해야 한다는 점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센토에 가야 하는 날이면, 잠깐이라도 눕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억지로 몸을 움직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의 따뜻한 물과 분위기는 저에게 매일을 견디게 해주는 작은 위로가 되었습니다.아르바이트는 필수일본어 실력이 어느 정도 늘고 나니 좀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즈음 시부야에 있는 오코노미야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관광객도 많고, 말도 .. 2025. 7. 5.
<엄마의 일본 유학기 7>자전거를 배우며 울던 새벽, 다시 이사, 마무리하며 일본에 유학을 와서 가장 크게 체감했던 생활의 불편함 중 하나는 자전거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숙사에 살던 시절에는 역까지 걸어가 전철을 타고 등교하거나, 대부분 도보로 해결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원룸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새벽 청소 아르바이트는 첫차보다 이른 시간에 출근해야 했고, 집이 역에서 거리가 있었으므로, 모든 걸 도보로 해결하기엔 체력도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주변 일본사람들은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그게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풍경이었지만, 저에게는 넘지 못한 벽처럼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자전거를 탈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자전거를 배우며 울던 새벽그래서 저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버려진 자전거를 한대 찾아, 자전거를 배우기로 마음.. 2025. 7. 4.
<엄마의 일본 유학기 6>첫 이사, 갑작스러운 귀국, 마무리하며 기숙사를 떠나 처음 시작한 윤희와 저의 집은 일본의 전통 아파트 1층 원룸이었습니다. 역에서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아파트 1층, 큰 도로에서 한 골목 안쪽에 있는 오래된 건물로, 우리들은 그곳이 마치 자취 인생의 시작점처럼 느껴졌습니다.첫 이사우리는 이사하는 날 한국에서처럼 같은 라인의 옆집에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불완전한 일본어로 한국에서 유학온 학생인데 잘 부탁드린다는 내용의 인사말과 작은 선물을 준비해 초인종을 누르니, 일본에서는 조금 낯선 문화였는지 “아, 이런 인사를 다 하네?” 라며 의외라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선물을 받아주었습니다. 우리들은 살림살이가 하나도 없던 터라, 천 엔 샵에서 밥그릇부터 수저까지 사야만 했고, 하교 후에는 동네를 돌며 버려진 서랍장, 의자 책상 등을 .. 2025. 7. 3.